친구들과의 모임이 점점 줄어드는 시기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일정 하나를 맞추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대학생 시절에는 연락만 하면 당장 나올 수 있을 만큼 모두 여유가 있었고, 갑작스러운 번개 모임도 흔했다. 그러나 지금은 직장, 가정, 개인 일정까지 겹치면서 한 번 모여보기까지 몇 주, 길면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 잡힌 모임은 모두에게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다들 이런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임 날짜가 다가올수록 단체 채팅방의 분위기부터가 이미 들떠 있었다.
이번 모임 장소를 어디로 정할까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모인 곳이 바로 ‘부천’이었다. 지리적으로 중간 지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래 좋아하는 친구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부천가라오케나 노래방들이 워낙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부천은 오래전부터 노래방의 성지라고 불릴 만큼 선택지가 많아서, 우리가 그동안 모일 때도 종종 들르곤 했던 익숙한 곳이다.
모임 당일, 우리는 저녁 7시에 부천역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출퇴근 시간대와 겹치다 보니 역 주변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고, 퇴근 후 편안한 복장으로 친구들과 마주하니 그간의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우리는 간단히 식사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들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터라 음식 메뉴보다 서로의 얼굴이 더 반가웠고, 자리만 잡자마자 모두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며 슬슬 분위기가 올라오자 가장 먼저 얘기 꺼낸 사람은 역시나 노래를 사랑하는 친구 C였다. “야, 오늘 컨디션 괜찮으면 노래 두 시간 간다?”라며 선전포고하듯 말하는데 모두 웃음이 터졌다. 그래서 2차 장소는 자연스럽게 노래방으로 결정됐고, 첫 번째로 향한 곳은 부천역 근처에 있는 부천역노래방이었다. 이곳은 내부가 깔끔하고 방음이 잘 되어 있어 우리가 예전에도 자주 찾던 곳이었다.
노래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은은한 조명 아래 어떤 곡을 부르든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따뜻한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우리는 인원 수에 맞게 조금 넓은 방으로 안내받았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C는 마이크를 들고 최신곡을 예약했고, 시작부터 열창했다. 음향 상태가 좋아서 노래 실력과 상관없이 다들 평소보다 더 잘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 B는 발라드를 좋아해서 조용한 곡으로 분위기를 잡았고, 나는 원래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예외로 했다는 마음으로 마음 편하게 따라 불렀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방 안의 공기가 뜨거워질 만큼 모두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잠시 쉬어갈 겸 외부로 나와 시원한 공기를 마셨다. 그러면서 다음으로 어디로 갈지 자연스럽게 논의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B가 “요즘 분위기 괜찮은 곳이 있다더라”며 부천퍼블릭을 추천했다. 처음에는 퍼블릭이라는 말에 모두 약간 의아했지만, B의 설명을 들으니 단순히 가볍게 술 한 잔과 대화를 즐길 수 있는 라운지형 공간이었다.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위기라 3차 장소로 딱 맞았다.
우리가 도착한 부천퍼블릭은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과하지 않은 조명과 잔잔한 음악이 분위기를 더욱 차분하게 만들어줬고, 노래방에서 흥을 충분히 올렸기에 이번엔 조금 감성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우리는 각자의 고민과 최근 있었던 일들을 깊게 털어놓았고, 서로 진심 어린 조언과 공감을 주고받았다. 누군가는 회사에서 겪은 답답한 일을 털어놨고, 누군가는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설렘을 공유했다.
이런 대화 시간이 있었기에 모임의 의미가 더 깊어졌다. 노래로 쌓인 에너지가 대화로 변하면서, 서로에 대해 다시 한 번 이해하고 감정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음료 잔은 비어 있었고, 다시 노래가 당기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의 모임은 노래로 시작해서 노래로 끝나는 게 공식이었던 만큼 마지막 장소는 분위기를 한 번 더 끌어올릴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지도 앱을 열고 근처의 또 다른 부천가라오케를 검색해 이동했다. 이번에 선택한 곳은 이전에 갔던 곳보다 조금 더 프라이빗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작은 가라오케였다. 부천은 확실히 다양한 스타일의 노래방이 많아서 취향대로 고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는 방엔 작은 테이블과 편안한 소파가 있었고, 음향 장비도 꽤 좋아 보였다.
여기에서는 90년대부터 최근 곡까지 다양한 장르를 번갈아가며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 친구 D는 학창시절 즐겨 들었던 록 발라드를 선곡해 분위기를 단숨에 감성적으로 만들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 방 안에 모인 네 명의 친구들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듯한 기분 속에서 웃고 떠들고 박수를 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단순히 즐겁게 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시간들, 그리고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여러 감정들이 이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여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이런 시간들이 있기 때문에 서로를 잊지 않고, 아무리 바빠도 한 번쯤은 달려올 수 있는 것 아닐까.
마지막 곡을 부르고 노래방에서 나오니 어느새 새벽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택시를 잡기 전, 친구들과 짧게 서로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다음엔 또 언제 보냐?”는 질문은 누구도 정답을 내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이미 모두 다음 모임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오늘 지나온 장소들을 떠올려보면 하나하나 다 의미 있었다. 부천역노래방에서 웃고 떠들며 에너지를 올렸고, 부천퍼블릭에서 서로의 속 이야기를 나누며 더 깊이 이해했고, 마지막 부천가라오케에서는 추억을 되새기며 진짜 오랜만에 마음껏 즐겼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우리가 들른 또 다른 부천노래방들까지 포함하면, 오늘 하루는 부천이라는 도시 자체가 우리 모임의 배경이자 추억의 무대가 되어준 셈이었다.
돌아오는 길의 길거리 풍경조차 괜히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서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웃음을 공유하는 시간. 그게 얼마나 귀한지, 오늘 모임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다음번 모임에서는 또 어떤 부천의 공간을 만나게 될지,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될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